[서울 근교의 조선 왕릉들] 왜적·화재 '상처' 남은 왕조의 애환 고스란히

입력 2017-09-25 17:01  

서울 선릉·정릉


[ 김희경 기자 ] 서울 강남구 선릉로에 있는 선릉과 정릉은 고즈넉한 분위기와 함께 조선 왕조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선릉(사진)은 조선 9대 성종과 왕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이다.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의 형태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봤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성종, 오른쪽 언덕(동쪽)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난간 석주의 윗부분에는 초기 난간석의 부드러운 맛이 그대로 남아 있고, 문무석인(文武石人)은 윤곽과 조각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1494년 성종이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495년에 경기 광주 학당리(현 선릉)에 능을 먼저 조성했다. 원래 이 자리는 세종의 아들인 광평대군 묘역이었다. 선릉이 조성되면서 광평대군 묘역은 현재 서울 강남구 수서동으로 이장됐다. 선릉은 유독 수난을 많이 겪었다. ‘선조실록’ 1593년(선조 26년) 4월13일자에는 “왜적이 선릉과 정릉을 파헤쳐 재앙이 재궁에까지 미쳤으니 신하로서 차마 말할 수 없이 애통합니다”란 경기좌도관찰사 성영의 치계가 기록돼 있다. 1625년(인조 3년)에는 정자각에 불이 나고, 그 다음 해에는 능침에도 화재가 발생했다.

정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능이다. 단릉 형식으로 왕만 모신 능이다. 석양과 석호의 전체적인 자세는 선릉과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표현에서 좀 더 사실적이다. 문무석인은 높이가 3m를 넘을 정도로 큰 편이다. 얼굴의 코 부분이 훼손되고 검게 그을려 있어 정릉의 수난을 상기시켜 준다. 정릉에는 슬픈 사연이 깃들어 있다. 1544년 중종이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에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 윤씨의 희릉 서쪽 언덕에 능이 조성됐다. 하지만 1562년(명종 17년)에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 윤씨가 중종의 능을 선릉 부근으로 옮겼다.

중종의 능침이 풍수지리상 좋지 않고 선릉 동쪽 언덕이 풍수상 길한 곳이라 천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홍수 피해가 자주 일어났다. 결국 중종과 함께 묻히기를 바란 문정왕후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금의 태릉에 능을 조성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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